터미널로 출근합니다 — 공인회계사저널 8월호 기고
한국공인회계사회 공인회계사저널 2026년 8월호에 실린 김다은 회계사의 기고. 창 여러 개를 오가던 일터가 검은 창 하나로 옮겨 온 과정과, 감사인처럼 AI를 검증하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공인회계사저널 2026년 8월호에 실린 김다은 회계사의 기고. 창 여러 개를 오가던 일터가 검은 창 하나로 옮겨 온 과정과, 감사인처럼 AI를 검증하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한국공인회계사회가 펴내는 공인회계사저널 2026년 8월호에 회계AI랩 김다은 회계사의 기고 「터미널로 출근합니다」가 실렸습니다. 부제는 "회계사의 일터는 이렇게 바뀌고 있습니다"예요.
회계사가 AI를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글은 많지만, 이 글은 조금 다릅니다. 사무실에서 실제로 겪은 일만 적었거든요. 핵심만 옮겨 봅니다. 전문은 공인회계사저널 8월호 전자책 60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공인회계사저널 2026년 8월호 60쪽 — 클릭하면 원문 전자책으로 이동합니다.
"저는 출근해서 노트북을 켜면 검은 화면 하나를 엽니다. 커서만 깜박이는, 개발자들이 터미널이라고 부르는 창입니다."
1년 전만 해도 엑셀, 워드, 위하고, 홈택스, 메일, 카카오톡을 띄워 놓고 창 사이를 오갔습니다. 지금은 리서치와 검토, 보고서 작성, 자료 정리, 메일 초안까지 하루 업무의 무게중심이 이 창 하나로 옮겨 왔어요. 직원에게 시키듯 자연어로 업무지시를 적으면, 터미널 안의 에이전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해서 보고합니다.
주변에 물어보면 대부분 브라우저에 챗봇 탭을 열어 두고, 궁금한 걸 묻고, 답을 복사해 엑셀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것도 쓸모가 있습니다. 다만 웹 챗봇은 아무리 똑똑해도 내 컴퓨터 밖에 있어요. 자료를 복사해 넘겨야 하고, 받은 답으로 추가 작업을 하는 몫은 사람에게 남습니다. 말하자면 유능한 외부 자문사입니다.
터미널은 다릅니다. 에이전트가 폴더 속 증빙과 원장, 법령 데이터베이스, 공시 자료를 직접 열고 만집니다. MCP라는 표준 규격 덕분에 메일이든 공유드라이브든 법령검색이든 콘센트에 꽂듯 연결하면 도구가 하나씩 늘어나요.

<그림 1> 1년 전에는 모든 흐름이 사람 한 명을 통과했습니다. 지금은 흐름은 터미널이, 판단은 사람이 맡습니다. (원문 61쪽)
거래처 기록도 이 연결 안으로 모았습니다. 개업하고 가장 힘들었던 것이 메일·전화·카카오톡·하드카피에 흩어진 거래처 히스토리였는데, 한곳에 모으니 그 거래처의 몇 년 치 사정을 꿰고 있는 담당자가 하나 생겼습니다. "재작년 그 건은 어떻게 정리했더라"라고 물으면 당시 근거 문서를 붙인 답이 돌아옵니다.
다만 연결했다고 저절로 유능해지지는 않습니다. 내 일의 순서를 스킬과 에이전트로 구조화하는 설계가 먼저입니다.
출근하면 이렇게 적습니다. "메일로 온 ○○사 세무질의, 쟁점 뽑아서 세법리서치 돌려 줘." 입력은 이 한 줄입니다.
세법리서치는 업무 프로세스에 맞춰 만들어 둔 에이전트 팀이에요. 전문서적을 뒤지는 직원, 법령과 예규·판례를 확인하는 직원, 웹을 검색하는 직원이 병렬로 검토하고, 인차지 직원이 결과를 대사해 보고를 올립니다. 회계사는 파트너로서 최종 판단만 합니다. 회계법인이 늘 일하던 구조 그대로인데, 이 팀은 밤낮없이 일하고 여러 거래처에 병렬로 투입할 수 있습니다.

<표 1> 같은 일, 손으로 할 때와 터미널에서 할 때 (원문 62쪽)
해외 법령 검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만 건은 1시간, 미국 건은 2시간 만에 1차 검토 초안이 나왔고, 이후 법률 전문가 의견과 같은 방향임을 확인했어요. 종착점이 아니라 질문의 질을 높이고 현지 검토 시간을 줄이는 출발점으로 쓴 겁니다.
"그러나 AI는 모르는 것도 자신 있게 말합니다. 저는 수도 없이 당했고 지금도 당하고 있습니다."
해외 특수관계자 간 자금거래 시뮬레이션을 검토할 때였습니다. 정확한 이자율은 법률과 시행령을 지나 시행규칙까지 내려가야 나옵니다. 당좌대출이자율 연 4.6%입니다. 에이전트는 시행령까지만 읽고 멈춘 채 다른 값을 확신에 찬 문장으로 보고했어요. 논리는 매끄러웠고 서식도 그럴듯했습니다.
"시행규칙 원문을 열어 대조한 뒤에야 걸러냈습니다. 걸러낸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산출물에 리뷰 장치를 겁니다.
검증은 그 작업의 히스토리가 없는 새 에이전트를 열어 맡깁니다. 자기가 기장한 오류는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니 기장법인과 감사법인을 나누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AI도 자기가 만든 산출물 앞에서는 확증편향에 빠집니다.
회계사들이 AI 앞에서 가장 먼저 꺼내는 걱정이 할루시네이션입니다. 그런데 직업적 의심과 원천문서 대조는 수습 시절부터 훈련받아 온 기술이잖아요. 그 암묵지를 절차로 풀어 적어서 "어떤 결과가 나와야 통과인지"를 에이전트에게 가르치는 것이 핵심입니다. AI의 가장 큰 약점을 다루는 훈련을 이미 마친 직업, 그게 회계사입니다.
클로드 코드를 만든 엔지니어 보리스 체르니는 직함이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 가치를 만드는 방식에 따른 다섯 유형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없던 것을 던지는 프로토타이퍼, 아이디어를 실물로 세우는 빌더,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스위퍼, 만들어진 것을 키우는 그로어, 굴러가는 것을 지키는 메인테이너.
기장과 신고와 마감이 반복되는 우리 업무의 대부분은 메인테이너의 일입니다. 그리고 AI가 가장 먼저 잘하게 되는 층도 정확히 그 층이에요.

<표 2> 회계사 가치 유형의 변화 — 기본은 메인테이너, 여기에 위 네 유형 가운데 하나를 얹는다. 출처: Boris Cherny, X(2026. 6.) · 유형명 번역과 회계사 적용은 필자. (원문 63쪽)
"메인테이너인 채로 속도만 올리면 더 빠른 메인테이너가 될 뿐입니다."
같은 업무를 더 싸게, 더 많이 처리하게 되는데 옆 사무실도 곧 같은 도구를 씁니다. 그 순간 도구는 우위가 아니게 되고, 내려가는 수수료의 바닥까지 다 같이 더 빨리 내려가게 됩니다.
출구는 겸직입니다. 메인테이너를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위에 하나를 얹는 것. 반복되는 업무가 보이면 손으로 처리하는 대신 그 업무를 처리하는 에이전트를 만들어 둡니다. 다음 달부터 그 일은 지시 한 줄로 돌아가요. 채용 기준도 바뀌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기장만 하는 직원이 아니라 **기장을 자동화하는 직원, '기장 빌더'**를 뽑고 싶다는 것이 기고의 표현입니다.
이 전환의 유불리는 조직 크기와 반대로 갑니다. 대형 법인은 보안과 내부통제, 승인 절차에 묶여 승인된 챗봇까지만 쓰는 경우가 많지만, 개업회계사는 결심하면 당장 터미널에서 작업할 수 있어요. 작은 조직이 실험 속도에서 앞설 수 있는 드문 시기입니다.
오늘 하시는 일 가운데 가장 반복적인 것, 가장 병목인 것을 딱 하나만 골라 보세요. 그리고 그 일을 손으로 하는 대신 자연어로 지시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결과물도 엉성합니다. 두 번째는 조금 낫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저는 터미널로 출근합니다."
전문은 한국공인회계사회 공인회계사저널 2026년 8월호 60~63쪽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전자책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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